이탈리아 중부의 소박한 과자
다양한 식문화가 혼재하는 이탈리아 중부의 소박한 과자. 수도 로마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를 거느린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은 남북으로 긴 이탈리아 반도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지방에서는 일찍이 에트루리아인과 고대 로마 제국에 의한 문명이 번성했어요. 그 후로도 남부와 북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양쪽의 식재료와 식문화가 뒤섞이며 발전한 지역이기도 해요.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구릉지대에서는 연질 소맥의 생산이 왕성했으며 토스카나의 산간부에서는 양질의 밤을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밤가루를 이용한 과자가 많이 만들어졌어요. 르네상스가 메디치 가문의 번영으로 화려한 궁정 과자가 발전한 한편, 농민 발상의 단순한 재료로 만드는 소박한 맛의 과자도 많아요. 이탈리아의 '초록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움브리아에서는 견과류, 바로 옆에 있는 마르케에서는 견과류와 함께 건과일을 사용한 과자도 다수 볼 수 있어요. 마르케는 19세기 이탈리아에 통일되기까지 여러 개의 작은 영토로 나뉘어 있던 탓인지 곳곳에 그 지역 특유의 비스코티가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수도 로마를 거느린 라치오에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소박한 구움 과자가 있지만 화려한 전통 과자는 적은데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의 번영 이후, 이 지역에 메디치 가문과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귀족이나 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 시절 지금의 과자의 원형이 다수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고대 로마 제국의 위대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어요.
밤 가루로 만든 카스타냐초
밤 가루로 만드는 달짝지근한 농민의 과자 카스타냐초는 토스카나 전역에서 만들어지는 농민 발상의 과자예요. 밤 산지인 토스카나에서도 특히 북부 무겔로 지방의 밤은 맛이 진하고 질이 좋기로 유명해요. 카스타냐초는 가을에 수확한 밤을 빻아서 만든 밤 가루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만들어져요. 밤 가루를 만드는 전통 방식은 껍질을 벗긴 밤을 그 껍질로 피운 불에 훈연해 말린 후 빵아서 가루로 만드는 것이에요. 밤 수확철에만 보 수 있는 그야말로 계정 한정판으로 품절되면 다음 가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귀중한 식재료이죠. 투스카나의 과자로 유명하지만 실은 리구리아, 롬바르디아, 피에몬테 등 아페닌 산맥 지대의 밤산지에서 널리 만드어져요. 이들 지방에서 밤은 추운 계정릐 중요한 영양원으로서 과자는 물론 요리에도 사용되어요. 리구리아에서는 향을 내는 요도로 로즈마리 외에 펜넬 씨를 넣기도 하고 피에몬테에서는 아마레티나 사과를 넣어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는 등 지방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기도 해요. 토스카나의 카스타냐초는 재료나 레시피가 매우 간단해요. 그만큼 맛있는 밤 가루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설탕, 달걀, 동물성 유지도 들어가지 않는 밤 가루의 은은한 단맛을 즐길 수 있는 소박한 과자예요.
반구 모양의 생과자 주코토
주코토는 반구 모양의 생과자로, 성직자들이 쓰는 작은 원형 모자 주케토 혹은 15~16세기의 병사들이 썼던 금속제 모자인 주코토와 비슷해 이런 이름이 붙여졌어요. 스펀지케이크에 리코타 크림, 알케르메스라는 붉은색 리큐어를 넣어 풍미를 더했죠.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형이 가능해요. 리코타 크림에는 견과류, 초콜린, 과일 당절임을 듬뿍 넣는데 리코타 대신 생크림을 사용하거나 생크림에 커스터드를 섞은 크레마 디플로마티카를 넣기도 해요. 16세기 중반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키가 메디치가를 위해 고안한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어요. 건축가이자 여술가였던 그는 음식에도 조예가 깊어 겨울철 눈이나 얼음을 모아 여름에도 보존이 가능한 저장고를 만드는 데 성공하며 식품의 냉동 기술을 발명했어요. 반구형 저장고 안에서 세미 프레도라는 새로운 과자의 장르를 완성해 엘모 디 카테리나라고 명명한 것이 최초의 주코토였어요. 메디치가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세미 프레도를 가져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요. 피렌체의 과자점에서는 다양하게 변형된 주코토를 만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주코토를 먹고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일 듯해요.